“수치심 권하는 사회” 비판 I

마음이 태도를 넘어 진실되기를 바라는 겁쟁이들의 바이블 책을 벗기는 남자

‘수치심’이라는 감정은 우리의 부서진 행동 뒤에 존재하는 침묵의 바이러스입니다. 그것도 전염성과 생존율이 매우 높은 바이러스입니다. 저자 브레네 브라운은 ‘수치심을 권하는 사회(Thought It Was Just Me)’를 통해 사람들이 수치심을 마주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탐구합니다. 저자는 수치심이 우리의 정서적 회복력부터 관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주며 수치심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을 위한 로드맵을 제공합니다. 저자 자신의 유머감과 따뜻한 인품이 책 전체를 통해 환하게 빛납니다.책 소개

“책을 벗기남자”의 평점:10/100점 『 수치심을 권하는 사회 』은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수치심”이 우리의 심리적 건강에 얼마나 강력하게 작용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특히 수치심과 죄책감, 공감과 동정심의 미묘한 차이 등 어려운 심리학적 용어를 예로 함께 이해하기 쉽게 설명합니다. 해도 전체적으로는 한심한 책입니다. 이 책은 “진실이 좋은 일” 아니다”(기분) 좋은 일이야말로 진실”이란 맥락에서 쓰여졌습니다. 수치심이 나쁜 이유는 결국 그것이 “우리의 기분을 상하게 때문에 그래서 힘드니까”라고 말입니다. 개인의 책임과 보편적 정의 같은 개념은 없습니다. 단지 감정입니다. 팩트는 너무 아파서 진실로부터 도망 치고 뭔가 “자존심”과 ” 좋은 감정”을 사수하겠다는 겁쟁이들의 바이블이라고 할까요? 개인의 책임은 묵살하고 무엇이든 환경 탓으로 돌리는 음모론에 몰아넣습니다. 최악은 이 책은 여성만을 위한 책이라는 것입니다. 예, 사례, 통계는 모두 여성의 여성을 위한 여성에 관한 것 뿐입니다. 마치 여성만이 수치심을 느끼듯이. 읽지 마세요. 극진한 10점 드립니다.책을 벗기남자의 총평

【본비판】

첫번째 비판. 감정들 원리 주의에 빠진 책 『 수치심 권장 사회 』은 전체적으로 하나의 일관된 철학 속에서 글을 전개하는 책이다. 바로”감정 공리주의”이다. 도덕 철학적 용어로 말하면”주 정론(emotivism)”라고 할까? 브라운이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하나같이 전제로 깔고 앉은 도덕관은 ” 좋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 즉 옳다”이다. 저자는 도덕적으로 옳기보다는 개인의 감정적 회복만을 말한다. 올바른 일을 할 책임감은 감정에 종속하고 자존심을 높이고 수치심을 회복하는 것만이 전부다. 그리고 이것이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좋다는 논리적 비약을 감행한다. 수치심이 남의 정서에 부정적이라는 것은 그녀 덕분에 잘 배웠다. 그러나 세상에는 우리의 마음과 관계 없이 지켜야 할 무엇이 있지 않을까. 때는 그 과정에서 적당한 수치심을 느끼고도 그렇다. 작가는 이렇게 썼다. 수치심, 분노, 공포, 고통을 초래하는 솔직함은 진정한 솔직함이 아니라.-216쪽

정확하다거나 사실에 근거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에 정직함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저는 사실을 말할 뿐입니다. 이거 팩트예요.”217쪽

저자는 개인으로 수치심, 분노, 공포, 고통을 안는 솔직함은 “진정한 솔직함이 아니라”라는 다소 엉뚱한 주장을 한다. 아니, 언제 진실이 감정에 종속했어? 정직이 정직함이 되려면 언제부터 누군가의 감정을 고려해야 했는가? 진실은 우리의 마음과는 별개로 진실이다. 저자는 마치 진실이 좋은 것은 아니다, 기분 좋은 것이 진실인 것처럼 말했다. 언제부터 꼬리가 개를 흔들었다? 언제부터 마음이 만물의 척도였다?심지어 저자는 결과적으로 팩트가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팩트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상대의 마음 때문이라면 우리의 솔직함을 얼마든지 철회하고 정직성을 유보해야 한다. “꽃으로 때리라”라는 말이 있듯이, 저자는 “얼마 팩트라도 팩트로 때리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냉정한 사실을 알리는 입장이라면 그것에 의해서 듣는 사람이 상할 수 있다는 사실은 고려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유명 정치 평론가 벤·샤피로가 슬로건으로 내세운 것처럼, 팩트는 당신의 기분 등 고려하고 있지 않지만(facts don’t care about your feeling), 우리는 어느 정도는 상대방의 감정과 전반적인 “정신 건강”까지 고려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팩트를 숨기고 정직하지 않게 주문하는 것은 별개다. 저자의 논리를 끝까지 몰고 가면, 겁쟁이의 마음 때문이라면 엄연히 현실 세계가 무엇이든 양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브렌 브라운 (Wikipedia)

사회문제를 말할 때 정답이 있다는 생각의 틀을 바꿀 필요가 있다. 올바른 답을 말하고 정확한 정보를 더 많이 아는 것을 목표로 하는 대신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함으로써 목표를 바꾸는 것이 도움이 된다.- 323쪽

상기의 인용도 일치한다. 그래, 사회 문제마다 정답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정답 찾기가 어렵다”라고 생각하고 바르고 정확한 답보다 ” 솔직한 표현”을 목표로 할 우선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때 저자가 쓴 ” 솔직함”은 먼저 제가 논한 정직이라는 뜻의 솔직함은 다르다. 지은이는 그저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털어놓는 것이 올바른 해결책이나 모두가 받아들여질 방안을 찾는 것에 우선한다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그러면 기분이 좋아지고 수치심이 물린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어!이것을 다른 바람에 표현한다. 만약 당신이 특정 사회 문제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다면, 그것을 “표현하는 것”만 ” 옳은 답을 찾겠다며 토론”보다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강혜은 작가가 『 굳은 개인 』에서 썼듯이”당신의 예민함이 정의가 아니라 당신의 불편함이 곧 불의의 근거도 아니다.” 올바름과 오류, 바로 실수의 영역에서 “기분”이 우선된다면 나 역시 『 수치심을 권하는 사회 』에 여섯마리 말을 찾아 글을 마쳐야 한다. 그러나 성숙한 개인, 굳게 개인, 그리고”정상적인 “개인은 자신의 기분과는 다르게 받아들여야 한다 팩트라는 것이 있어서 뭐든지 외부 세계를 꾸짖기보다는 그런 현실과 공존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저도 기분이 아닌 논증을 통해서 이 책을 비판하고 그 의무를 스스로 맡는다. 더 이상의 “겁쟁이들의 바이블”을 본 적이 없다.(이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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